‘늑장공시’ 의혹으로 한미약품이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의 최근 공시 행태가 변화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신약 개발 임상 진행 사항과 기술 수출 내용에 있어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공개하고 있는 것.

이같은 이유는 기업들의 무책임한 공시가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줄 경우 시장의 신뢰를 잃고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진것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각종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권익 보호는 외면한 채 규정만 지키면 된다며 불리한 정보는 연휴전 장마감후 살짝 악재를 내놓는 ‘올빼미 공시’나, 비밀보호 규정을 들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깜깜이 공시’, 불리한 조항은 축소하는 ‘눈가림 공시’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온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같은 공시의 형태가 사실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셀트리온은 판매 자회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와 글로벌 제약업체 테바가 자사의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및 허쥬마 북미지역 판권계약 체결했다고 6일 발표했다.

판매 품목은 셀트리온의 트룩시마(CT-P10)와 허쥬마(CT-P6)로 License Fee는 1억 6천만불이며 이 중 6천만불은 상황에 따라 반환 및 선급금으로 전환 가능하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전체 계약금이나 규모를 조명하는 분위기에 반해 선급금 내역과 이 중 일부가 상황에 따라 반환될 수 있다고 사전에 밝힌 셈이다.

셀트리온 측은 “상업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제대로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전했다.

지난 13일 녹십자는 글로벌 전략과제에 대한 사업 진단 결과, 유전자 재조합 A형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중단하고 중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2012년부터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진행하면서 후속으로 중국 임상을 준비해왔다.

녹십자는 미국 임상 기간을 당초 2~3년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희귀질환의 특성상 신규 환자 모집이 더디게 진행되어 임상이 계획보다 지연됐다. 이는 투자비용 증가와 출시 지연에 따른 사업성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녹십자는 미국 임상을 더 이상 강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글로벌 제약사에 있어서 신약의 임상이 중단되는 것은 다반사였으나 국내 제약사가 자발적으로 임상 중단을 발표한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를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발표하지 않는 일이 관례였다.

특히 녹십자의 임상 중단은 약의 부작용 때문이 아닌, 사업 전략에 따른 결단인 만큼 더더욱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녹십자 관계자는 “국내 제약계는 드문데 다국적사는 임상을 중단하면(공시사항이 아니어도) 거의 대부분 발표를 한다”며 “투자자나 소비자 등에게 자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허은철 녹십자 사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상황, 투자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공략이 가능한 중국시장에 집중하고 차별화된 후속 약물 개발을 가속화 시키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유나이티드제약은 12일 384억원 규모의 개량신약 2개제품(클란자CR정·실로스탄CR정)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계약해지 사유는 계약상대인 JJK(Jiangxi JiminKexin Group)의 일방적 계약해지 요구라고 밝히면서, 최초계약시 기술수출료 명목으로 40,500 USD 를 획득하였고 계약종료가 발효한 날(2016년 10월 12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반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공시 규정 상으로는 다음 날인 13일 까지 공시하면 되지만 당일 공시하고, 계약금 반환 사실까지는 밝힐 필요는 없으나 발표하는 등 한미약품 사태의 영향으로 제약사들의 공시발표 행태가 바뀌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LG생명과학은 14일 공시를 통해 휴미라 임상 3상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개발 및 진행사항에 따라 임상샘플 매출액 등 기술 수출료 100억 원 이상을 수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자세한 계약 내용은 계약 상대방과의 비밀유지 약정에 따라 밝힐 수 없다고 공시했다.

LG생명과학의 공시처럼 현행 공시제도 상 제약사들의 늑장공시나 깜깜이 공시가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부실공시는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주식시장의 침체로 이어진다며 공시제도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증시 관계자는 “기업 공시의 경우 거래소의 제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기업들이 먼저 나서 주가의 변동사항이 될 만한 내용을 밝혀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8일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의혹으로 불거진 공시 제도 문제와 관련, "기술이전 등 중요공시 사항은 의무 공시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해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 전문가는 “공시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시하는 문화가 조성될 때 기업의 투명성이 제고되어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병욱 기자  bucho85@pharm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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